이영남(李英男;1566~1598)의 자는 사수(士秀)이고 양성이씨(陽城李氏) 13세손이며 임란공신 선무원종공신1등에 서록됐다. 12세에 부모상을 당하여 3년 시묘한 효자다.
19세시 1584년 무과에 급제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 도청부경력으로 승진. 1592년 원균(元均) 휘하의 율포만호(栗浦萬戶)로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李舜臣)에게 청군하여 소비포권관(所非浦權管)으로 옥포(玉浦)를 위시 사천(泗川)·율포(栗浦)·한산도(閑山島)등 해전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1594년 당항포해전(唐項浦海戰)에서는 삼도명장(三道名將)에 선발되어 큰 공을 세우고 현지 과거에서 녹명관(錄名官)이 되었다. 1595년 태안군수(泰安郡守)·강계부판관(江界府判官)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 1596년 장흥부사(長興府使). 1597년 정유재란시 원균이 패한 후 명량해전(鳴梁海戰)에서 대승. 가리포첨절제사 겸 조방장으로 1598년 노량해전에서 왜군 500척과 교전중 충무공이 전사하자 의를 위해 홀로 살아남지 않겠다고 하며 남은 함대로 공격을 가하다가 전사했다. 노복 일학(日鶴)이 영구를 모시고 1599년에 충북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 산 8-4. 갈현산 선영 하에 안장했다. 충무사(忠武祠)는 충무공의 유해가 일시 모셔졌던 곳으로 명나라 수군제독(水軍提督) 진린(陳璘)이 이곳에 관왕묘를 건립하고 탄보묘(誕報廟)라 하였으나 광복후 1953년 충무공의 위패를 봉안하고 충무사(忠武祠)로 개칭하였다. 1959년 충무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충무공과 함께 순국한 이영남장군을 배향하였다. 1985년에는 이규선(李奎鮮) 화백이 그린 영정을 봉안했고 1986년에는 양성이씨대종회에서 제위답을 헌납. 매년 양력 4월 28일과 음력 11월 19일에 향사하고 있으며. 1981년 사단법인에 등록되고. 1960년 충북 진천군에 현충비가 건립되고 묘역에는 사적비가 세워졌다.
이 영정은 이규선 화백이 일본 교토에서 구해온 두터운 본견천에 이조시대의 복식을 고증하여 그렸는데 마무리 할때는 밤새우면서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세번째 그리면서 수염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1985년 3월 20일 완성했고, 1985년 4월 28일 고금도 충무사에서 영정 봉안식을 가졌다.